1860년대 벌판이었던 이곳에 집을 지은 플러드는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유행했던 `골드러시` 물결을 따라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향합니다. 많은 실패를 겪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정보도 모인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에 선술집을 차립니다. 그는 나중에 그 유명한 `페어몬트 호텔(Fairmont Hotel)` 시조가 된 엔지니어 제임스 페어 등을 만나 네바다주에 있는 은광 사업에 손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후대에 길이 남을 일을 하나 저지릅니다. 은광을 주식 시장에 상장시킨 것이죠. 당시로서는 은광을 상장시킨다는 아이디어가 혁명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금이나 은이 가진 가치는 채굴돼 시장에서 거래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것이었는데, 그는 네바다 사막에서 이제 갓 발견된 은 덩어리를 바로 주식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죠. 비록 투기라는 오명도 뒤집어썼지만 미래에 발생할 은의 가치를 현재에 거래하게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 하나로 그는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수백조 원의 부를 거머쥡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의 역량과 선술집을 운영하면서 얻은 정보, 기발한 비즈니스 모델이 결합된 플러드의 프로젝트는 지금 이곳에 있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그것과 많이 차이가 나지 않아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산책이 늘어난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이런 곳들을 걸으며 150년 전 과거로 여행을 떠납니다. 멀리 있는 것만 같은 미래를 현재로 당기는 방법은 무엇인지, 거대한 부를 거머쥐게 만드는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지 등 플러드와 함께 걸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길어 봐야 150년 역사가 전부인 실리콘밸리. 하지만 이 지역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기업가들입니다.
린든우드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플러드를 비롯해 릴런드 스탠퍼드(스탠퍼드대 설립자), 앤디 그로브, 스티브 잡스, 래리 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기업가들의 유산(Legacy)들이에요. 이 땅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인재가 보고 듣고 경험하며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바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혁신하는 사람들(Innovators)이란 점이 정말 고마운 일인 것 같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150년 동안 혁신한 사람들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유산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올렸습니다. 위대한 혁신을 일으킨 한국 기업인은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스토리는 우리가 산책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큼 쌓여 있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쌓고 남겨 나가야 할 유산은 지금도 혁신하고 있는 사람들의 스토리들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린든우드를 걸어 나왔습니다.
[실리콘밸리 = 신현규 특파원 rfrost@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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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0, 2020 at 10:04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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