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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종교학자 정치와 종교는 많은 점에서 닮았다. 세계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소속감을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세계관의 관계에, 후자는 지지 정당과 종교 소속의 관계에 해당한다. 그러나 통속적인 논의에서 이 은유가 가장 즐겨 사용되는 예는 정치적·종교적 타자의 이질성과 맹목성을 지적할 때이다. 그럴 때 열정적인 정치적 타자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신도”로 표상된다. 특히 정치인 팬덤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이교도”에 대한 증오와 조롱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 시기의 대선은 “살해당한 메시아”인 노무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도와 화신들이 치르는 영웅적 각축으로 묘사된다. 최근 이 은유를 가장 즐겨 사용하는 논객은 진중권 전 교수일 것이다. 현 정권을 “신적폐”로 규정하고 연일 맹렬한 비판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강연, 칼럼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자들을 종교 신자들에 빗대기를 서슴지 않는다. 진 전 교수는 과거 박정희를 찬양하는 “구적폐”들을 향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라 외치며 우상파괴를 시도했듯이, 오늘날의 문재인, 조국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문천지교”, “조순진리회” 등의 표현을 동원해 조롱하고 있다. 종교학자로서는 이 비판의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이런 종류의 담론이 가지는 의도와 효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애초에 근대 지성사에서 ‘종교’라는 범주가 등장하고 종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은 불가해하고 기이한 타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등과 같은 제도종교에서 이름을 붙이기 힘든 민속종교나 원시종교까지를 포괄하는 종교 개념이 등장한 것은 이 시점이다. 이전까지 서구인들은 문화적 타자를 “우상숭배자” 혹은 “악마숭배자”와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 이 “숭배(컬트)”를 자신들의 “종교”와 같은 범주에 포함함으로써, 비로소 타자에 대한 진정한 문화상대주의적인 태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컬트”라는 용어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혹은 이해하기 싫은) 믿음을 가리키는 말로 남아 있다. 신천지와 대순진리회를 끌어들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진 교수의 은유는 컬트, 즉 신종교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에 기대고 있다. 이들 교단의 신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맥락에 끌려 나와 억울하게 두들겨 맞은 셈이다. 정 집권당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자들을 종교인에 비유하고 싶다면, 사실 그들은 주류 교단 내부의 배타적이고 열성적인 그룹과 더 닮았다. 그에 비하면 신종교 비유는 부적절하지만 편리하다. 조롱의 효과는 더 크고, 해당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반발할 가능성은 더 적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그가 즐겨 인용하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딱 들어맞는 대상이다. 또 설령 그가 비난하는 대상이 정말 ‘신자들’과 비슷하다 해도 이런 비판의 효과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그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종교 비판이 무신론자들의 환호를 받을 수는 있지만, 실제 종교인들에 대한 ‘계몽적’ 효과는 미미한 것과도 같다. 그의 비판대로, 정치인 팬덤의 자기 진영에 대한 과잉 충성은 근본주의적 종교의 속성과 유사하다. 그러나 외부로부터의 공격은 그들의 믿음과 결집을 해체하기는커녕 강화한다. 진중권의 정치 비평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가치는 파시즘 징후에 대한 경종에 있을 것이다. 그는 정치인 팬덤이 대중을 비판적 이성 없는 “좀비”로 만드는 현상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의와 부정을 가르는 가치 기준이 내 편과 적을 가르는 진영논리로 대체되는 현상 또한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을 비판하면서 정작 그 파시즘의 주무기인 문화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이용하는 것은 비겁할뿐더러 이율배반적이다. 괴물에 맞서기 위해 악마의 힘을 빌린 신화적 영웅들의 말로는 늘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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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5, 2020 at 07:46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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