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 충치와 풍치는 벌레 탓인가, 미생물의 장난인가?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16)
[알수록 +] 충치와 풍치는 벌레 탓인가, 미생물의 장난인가?
입력 : 2020-10-18 07:00:00수정 : 2020-10-17 12:27:56게재 : 2020-10-18 07:00:00
우리 몸속에는 무수한 미생물이 서식한다.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수를 10조 개로 치는데, 이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우리 몸에 존재한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음으로 양으로 건강에 영향을 미치면서 말이다. 때로는 온갖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의 몇 주제는 입속, 위 속, 대장 속, 기타 구멍 속 미생물의 종류와 생태,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각종 질병 등에 대해 알아본다.
첫 주제는 입속에 서식하는 미생물이다. 구강에는 여러 종류의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간다.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정상인의 침 속에는 ml 당 세균이 5억~10억 마리, 치태와 치석(플라크·plaque), 혓바닥에는 이보다 수 십 배나 더 많은 미생물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 미생물은 대개 박테리아(세균)로서 서로 공생과 견제를 반복하며 나름 적합한 생태계를 유지한다.
입속의 대표적 질병은 충치(蟲齒)와 풍치(風齒)다. 이를 혹여 벌레가 이빨이나 잇몸 뼈를 파먹는다고는 생각하지는 않겠지. 한자의 뜻으로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세균이 주원인이다.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을 때 그렇게 붙인 이름 같다. 충치는 미생물이 생산하는 유산이라는 물질이 이빨을 녹이는 것이고, 풍치는 또 다른 여러 세균이 치석 등에 붙어 잇몸에 염증을 내고 치아를 지탱하는 치조골을 녹이는 현상이다. 요구르트의 신맛이 같은 유산이다.
우선 충치부터. 충치는 '치아우식증'이라고도 하며, 원인 세균은 간단히 뮤탄스(mutans)라도 부른다. 이 균이 치태나 치석에 붙어 있다가 음식물이 끼이면 이를 분해하여 유산이라는 산을 생성해 치아의 표면을 녹인다. 충치원인균의 정식학명은 Streptococcus mutans이며 입속에 상존하는 유산균의 한 종류이다. 유산이 천천히 에나멜질을 녹이고 상아질을 녹여 신경부위까지 도달하게 되면 이가 아프고 구멍이 난다. 치아는 유산뿐만 아니라 다른 산에도 약하기 때문에 우리가 즐겨 먹는 식초, 탄산음료에 의해서도 녹는다. 초장을 많이 먹고 나면 치아 표면이 텁텁해지는 현상이다. 이 정도의 손상은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기 때문에 별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충치의 치료는 손상 부위를 갈아내고 아말감 등으로 메꾸는 방법뿐이다. 심하면 덮어씌우는 보철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충치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치아 건강을 위해 양치질을 잘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음식을 먹고 '3분 이내, 3분 동안, 하루 3번' 양치를 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다. 이것을 3.3.3법칙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는 치아에 묻는 음식물을 빨리 제거하여, 유산균의 먹이를 없애주는 작업이다. 요즘에는 식후에 바로 하는 양치질이 치아 손상을 촉진한다고 경계한다. 음식에는 산성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어 식후에는 치아 표면이 손상을 받은 상태인데, 치약이라는 연마제로 닦으면 표면의 마모가 심해져 좋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칫솔질은 식후 1시간 정도 지나 손상 부위가 다소 복구된 후에 해야 좋다는 주장도 있다.
설탕을 줄이는 것도 한 예방법이다. 충치 원인균은 설탕을 원료로 하여 치태 성분인 덱스트란(탄수화물)이라는 끈적끈적한 점질성 물질을 만든다. 매끈한 치아에 잘 붙기 위해서다. 이게 바로 이 똥이라는 거. 오래 두면 여기에 칼슘과 인산 등이 침착하여 치석(치태)이 되고, 온갖 미생물이 붙어 안식처로 삼는다. 치아 뿌리 부분에 치석이 많이 생기면 치주염의 원인이 된다. 구강청결법 중에 근거 없는 이야기로 오일풀링이라는 것이 있다. 식용유를 입에 머금고 가글을 해주면 구내 유해 미생물을 죽인다는 터무니없는 주장 말이다.
한편, 자일리톨(xylitol)이 설탕의 대체 감미료로 충치를 예방한다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충치 균에 대사가 잘되지 않아 생육을 억제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정도의 연구보고에 힘입어 대대적으로 선전한 결과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바, 1~2개 씹는 자일리톨 껌으로는 충치예방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식약처는 앞으로 '충치예방' 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입법 고시했다. 예방에 도움이 되려면 성인용 기준으로 매일 12~28개는 씹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음은 충치보다 더 무서운 풍치에 대해서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치은염(gingivitis)과 치주염(periodontitis)으로 나뉜다. 잇몸에 염증이 국한되면 치은염이라고 하고, 잇몸 뼈 주변까지 진행된 경우를 치주염이라 한다. 치은염은 치료가 비교적 잘 되나, 치주염은 치아의 탈락까지 가는 심각한 질병이다. 풍치는 일종의 노인성 질환으로서 나이가 들수록 발생률은 높아진다. 원인은 치아에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치석, 거기에 번식하는 원인균, 동시에 조골 세포와 파골세포의 밸런스가 깨지기 때문이다. 1차로 세균에 의해 주변 조직에 염증반응이 나타나고, 그 결과로 치아를 지탱해 주는 조직이 손상된다. 원인균은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Porphyromonas gingivalis), 타네렐라 포르시티아(Tannerella forsythia), 트레포네마 덴티콜라(Treponema denticola) 등이 알려져 있다.
치료의 기본은 치석을 깨끗이 제거하여 세균의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치료에는 잇몸 사이에 특수 약제를 넣기도 하고, 원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사용할 수도 있으나 정도가 심하면 치료가 어렵다.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은 꼼꼼한 칫솔질과 정기적인 스케일링으로 치태와 치석, 거기에 붙어사는 세균을 없애는 것이다.
또 무서운 것은, 이런 치주 질환이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설이다. 염증 부위에서 사이토카인 등이 분비되어 다른 조직에 작용하거나 전신질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 즉, 치주 질환이 심근경색, 조산, 류마티스, 제2형 당뇨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논문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직 연구가 미진하여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가설이다.
다른 구강질환도 있다. 혀, 입술, 잇몸 등이 헐거나 염증이 생기는 설염과 구내(강)염 등이 모두 세균이 원인이다. 음식을 씹을 때, 혀나 입술을 깨물어 상처가 날 때 자주 발생한다. 통증이 매우 심하다. 심하지 않으면 그냥 두어도 낫기는 하나, 바르는 약이나 항생제가 치료에 도움이 된다. 또 입술이나 입언저리에 물집이 생기는 허피스(구순포진)라는 질병도 있다. 피곤할 때 잘 생긴다. 이는 바이러스성으로 건강할 때는 몸속에 잠복해 있다가 몸이 약해지면 나타난다. 특별한 치료 약은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된다. 또 입 냄새도 미생물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구취는 충치나 풍치 혹은 입안이 청결하지 못할 때, 음식물 찌꺼기의 부패가 직접적인 원인이다. 입 냄새의 다른 원인은 편도염, 식도염, 위염, 기관지염, 폐렴, 당뇨, 흡연 등도 관여한다.
치아가 좋은 것을 '5복 중 하나'라고 했다. 이는 다소 유전적인 요소가 있지만 첫째는 관리다. 치아가 좋으면 음식을 잘게 부수어 소화를 촉진하고, 위장에 부담을 적게 주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같은 나이에도 치아가 좋은 사람은 건강하고 젊게 보인다. 실제 음식을 저작(씹는)하는 행위가 뇌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뇌세포의 사멸을 늦춘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요즘은 임플란트라는 기술이 발달하여 인공치아를 잇몸 뼈에 심는 시술이 유행이다. 비용이 들긴 해도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뼈만 튼튼하면 본래 치아에 못지않은 저작(咀嚼)성을 얻을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며 사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다음 주제는 위속 미생물, 특히 위암의 원인으로 치는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licobacter pylori)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
October 18, 2020 at 05: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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