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비트코인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아르헨티나에서 6년간 특파원 생활을 한 덕분이었다.
아르헨티나 경제가 붕괴하는 모습을 수차례 봐오면서 법정 통화 시스템에는 국가를 운영하는 기관에 대한 탄탄한 신뢰가 필수란 교훈을 얻었다.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할 때 시스템은 언제나 붕괴하기 쉽다.
필자가 2009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오고 4년 뒤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제야 이 사실을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이전에도 아르헨티나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현지 전문가들도 틈만 나면 부패한 자국 지도부에 대해 얘길 했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된 암호 프로토콜 덕분에 이용자들이 중앙의 중개업체들을 신뢰하지 않고도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국민의 신뢰 결여와 아르헨티나의 망가진 금융 사이의 관계가 보였다.
이는 결코 아르헨티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아르헨티나 정부와 투자자들 사이에 또 한 번의 채권 재조정 협상이 마무리되고 있어 650억달러(약78조원) 규모의 외채에 대한 채무가 재조정될 시기이고, 사상 최악의 경제 위축을 겪고 있는 고질적인 고변동성 경제로 인해 이 문제를 더욱 깊이 살펴볼 필요가 생겼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실패는 특히 미국에 교훈을 주고 있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 변화가 있을 거란 예측들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모델이 이런 종류의 실패에 강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칼럼은 ‘비트코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아니다. 코인셰어스(Coinshares)의 최고전략책임자(CSO) 멜텀 드미러스가 지난주 말했던 것처럼 비트코인만으로 아르헨티나나 터키, 베네수엘라, 필리핀의 모든 국민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순진하고도 모욕적인 일이다. 사용하기 어려운 이 기술이 경제 궁핍의 근본적 원인을 고치는 특효약이 될 순 없다.
그런데도 거래나 기록 보관과 관련해서 비트코인의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이 기존의 통화 거버넌스를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귀중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지난주 필자를 대신해 본 칼럼을 썼던 주필 마크 호크스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블록체인이 모든 해답을 쥐고 있진 않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는 있다.”
신뢰할 수 없는 국가
아르헨티나 금융 시스템의 실패 원인과 탈중앙화된 대안을 이해하기 위해선 돈의 역사와 권력 구조,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천년간 돈은 국가(사실상 통치자를 의미)라는 개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커뮤니티마다 사용되는 화폐는 달랐다. 초기 미국 식민지에선 조개껍데기로 만든 구슬인 왐펌(wampum)이, 감옥에선 담배가 화폐로 쓰인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그러나 군주나 주 정부가 발행한 화폐가 어디서나 지배적으로 사용됐다. 법정화폐나 세수를 거둬들일 통화를 결정할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이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는 민족국가가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앙정부들은 법정화폐 발행 주체로서의 준독점적 권한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시중은행에 중앙은행 보유고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을 주고, 그들을 화폐의 발행과 분배, 유통을 담당하는 중개 기관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정부와 은행들이 법정화폐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할 순 있었어도 이용자들 사이에서 해당 화폐의 가치까지 좌지우지할 순 없었다. 화폐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이 감소하기 전에 금이나 외화, 아니면 그 외 다른 물건을 쌓아두는 방식으로 원치 않는 법정화폐를 팔아 치우고, 가치가 더 높은 자산으로 갈아탔다. 정부가 이익을 추구하며 고유의 발권력을 남용할 때 그들은 법정화폐의 대안을 찾아 나섰다.
금본위제나 아르헨티나가 1990년대 제정한 달러 고정 환율제(페그제)같이 견고하게 고정된 화폐 체제가 그런 리스크를 어느 정도 예방해줄 수 있다.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정책적 구속력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보장하던 금태환 정책(금을 달러와 고정 비율로 바꿔주는 정책)을 1971년 폐기하고, 에두아르도 두알데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지난 2001년 페소와 달러의 1대1 태환제를 폐기한 것처럼 정책적 구속력도 결국엔 국가 권력 앞에선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국가 권력이란 이처럼 절대적이다.
결국 화폐의 운명은 국민들이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는가에 달려있다. 지난 1971년 이래로 미국 경제는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보인 반면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 경제는 악화 일로를 걸어왔다. 이를 두고 정부 시스템에 대한 제도적 신뢰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또 최근 두 국가 간 격차가 급격히 줄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거다).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여느 국가들처럼 아르헨티나에서도 국민의 신뢰 부재가 금융과 경제의 변동성으로 나타난다.
그런 국가들에서는 금융 시스템이 국민이 아닌 투기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공매도 세력이 몰려들어 대규모로 주식과 채권을 매도하고, 그러면 정부는 자금이 국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벌써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고, 자국 화폐인 페소를 보호하기 위해 은행 예금 인출과 송금을 제한했지만, 결국 결제 시스템만 마비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 다음엔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반등을 노리고 부실 채권을 사들여 수익을 올리려는 벌처펀드(vulture funds) 투기 세력들이 들어와 해당 국가의 자산(채권)은 과매도 수준에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지저분한 게임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시스템이 실패한 책임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정부에 있다.
주권적 자아
경화(hard money)를 예찬하는 비트코인 투자자들과 달리 필자는 화폐 공급에 엄격한 제한을 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비트코인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비트코인의 엄격한 발행체계 때문에 정부가 신뢰를 잃었을 때 ‘디지털 금’으로서 강력한 헤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단지 90년대 아르헨티나의 통화위원회가 그러했듯 화폐 공급량이 정해져 있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디플레이션 화폐는 주로 그 화폐를 이미 보유한 사람의 이익에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위축되는 시기에는 소비자나 투자자들이 돈을 보유하고 있기보단 돈이 쓰여 기대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에 둬야 한다(크립토 트위터(Crypto Twitter)에서 성난 독자들의 원성이 벌써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같은 블록체인 솔루션이 어떻게 하면 아르헨티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신뢰 문제’를 개방형 네트워크가 정의하는 규칙인 ‘오픈소스 알고리듬’으로 전환하는 급진적인 거버넌스 모델을 새롭게 만들어 닉슨 대통령도 맘대로 바꾸지 못할 규칙을 가진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모든 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향후 100년간 총공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된 비트코인의 규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어떤 규칙에 동의하든 그 규칙 자체가 중앙 권력에 의해 바뀔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국가의 또 다른 개념을 말하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이나 에두아르도 두알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 JP모건(JPMorgan) CEO 제이미 다이먼을 신뢰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안위와 가치의 거래에 도움이 되는 화폐나 시스템을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우리에게 직접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트코인이든, 달러든, 금이든, 스테이블코인이든, 아니면 다른 블록체인 모델이든 가장 중요한 건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 개개인이 한 선택을 통해 황송하게도 국민을 통치해주시는 권력자들을 겸손하게 만들 수 있도록 선택권이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 시스템의 미래에 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는 요즘,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에서는 달러 패권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아르헨티나의 비극을 타산지석 삼아 ‘주권적 자아’를 완성할 보편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프라이버시 코인이 뜬다
-코인데스크 선임 연구분석가 갤런 무어-
최근 여러 유명인사와 기업들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해 비트코인 기부 사기를 친 사건을 통해 전 세계는 비트코인의 투명성을 다시 확인했다. 코인데스크를 포함한 암호화폐 분석 전문가들이 관련 해커의 자금을 추적, 그 출처와 이동 경로를 분석해냈기 때문이다.
소위 ‘프라이버시 코인(privacy coin)’이라 불리는 개인정보보호를 중시하는 익명성 기반의 암호화폐는 이런 자금 추적으로부터 거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중 대시(dash), 모네로(monero), 지캐시(zcash)가 여러 분기에 걸쳐 연속적으로 검증 가능한 거래량을 보이며 시장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20대 자산을 꼽은 ‘코인데스크 20(CoinDesk 20)’ 리스트 안에 들었다.
거래량에선 비트코인이 단연 1위지만, 그보다 거래량이 낮은 자산들이 수익률에선 앞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지난주에도 그랬다. 특히 프라이버시 코인이 눈길을 끌었는데, 보통 거래량 순위로는 10위 바깥에 머무는 프라이버시 코인들이 무려 2개나 연간 수익률(YTD) 5위 안에 들었기 때문이다.
앞선 트위터 해킹 사건 때문에 프라이버시 코인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증거는 거의 없으나,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이 3개의 프라이버시 코인들이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코인데스크 리서치(CoinDesk Research)의 7월 보고서에서 프라이버시 코인의 변동성과 상관관계를 더욱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본지는 올여름 내내 이 주제를 지속적으로 분석할 계획이다.
‘돈을 다시 생각하다(Money Reimagined)’는 돈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바꿔놓고 있는 기술, 경제, 사회 부문 사건들과 트렌드들을 매주 함께 분석해 보는 칼럼이다.
· Translated by NewsPeppermint.
제보, 보도자료는 contact@coindeskkorea.com으로 보내주세요.
August 10, 2020 at 05:00AM
https://ift.tt/3fLLWVE
아르헨티나의 비극이 시사하는 것 - CoinDesk Korea 신뢰 그 이상의 가치 - Coindesk Korea
https://ift.tt/3dUw0Ai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