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굶주린 사람들의 비극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내 집 주방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별 다른 것이 없음에도 꽤 풍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른바 남의 불행이나 먼 곳의 비극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내가 느끼는 평화로움들 말이다.
이런 현상들을 놓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신경심리학자 조지 바라자 교수는 가상의 어두운 콘텐츠들을 통해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가상의 현실인 TV, 영화, 혹은 소설에서 매우 어둡고 비참한 내용을 보는 직후에 자신의 현실을 보면서 `그나마 나와 나의 주변은 괜찮군`이라는 안도감과 평화로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에서 한결같이 관찰되는 또 다른 결과를 간과하면 안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긍정적 기분들은 매우 휘발성이 강하다는 점 때문이다. 즉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모든 종류의 빨리 사라지는 쾌감은 다시 그만큼의 경험을 하기 위해선 더 큰 양과 크기가 필요하다. 내성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회가 불행할 때 뇌에서 느끼는 이 불편한 종류의 기쁨과 쾌감을 계속해서 지속시키기 위해선 점점 더 크고 자극적인 남의 불행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처벌과 응징만이 난무하는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물론 잘못은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후련하거나 정의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잘된 것에 대한 상이나 현실의 긍정적인 것에 대한 격려와 찬사가 제대로 병행되지 못하거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채 이렇게 잘못을 처벌하는 시스템만 가동된다면 이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하고 잔인한 처벌만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가 왜 이렇게 잘못한 사람을 하나 지목해 필요 이상의 처벌을 가하는 모진 사회에 살고 있지?`라는 탄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이제 누구도 나서는 사람 없이 조용히 숨죽이며 그저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 하는 이른바 수동적인 조직과 사회가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처벌의 강도가 늘 크게 되면 정작 큰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과 그보다는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돼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사회나 구성원들이 그 결과를 놓고 당황해하는 현상이 초래되곤 한다는 점이다.
뇌과학에서는 쾌감을 느끼는 부위를 보상중추라고 부른다.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보상중추를 활성화시키는 행위는 보람 있는 일을 했을 때다. 현재 우리 조직과 사회를 보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남의 불행이나 남이 받는 처벌로 인한 쾌감에 점점 더 자극적인 몰입을 하게 만들지 혹은 보람 있는 일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보상 중추를 활성화시킬지의 갈림길에 서 있는 곳들이 굉장히 많이 눈에 띈다.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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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02, 2020 at 02:17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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