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장현기의 헬로우! 브릭(14)
오늘 소개해 드릴 ‘체코 리퍼브릭’이라는 이름은 이 국가명에서 따온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체코라는 나라를 브릭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에 걸맞게 체코 리퍼브릭은 체코를 대표하는 매우 유명한 건축물들이 레고 브릭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전시장에는 레고 테크닉 부품으로 제작한 전투기나 자동차 같은 작품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건축물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브릭 아트를 만나볼 수 없다는 아쉬운 점은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표현이 돋보이는 멋진 건축 작품으로 충분히 만회됩니다. 오히려 ‘체코 리퍼브릭’의 뚜렷한 개성과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018년 1월 문을 연 이곳은 아직까지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내외 포털 사이트나 유튜브 채널에 불과 몇 개의 관련 정보가 있습니다. 개장한 지 2년 남짓한 짧은 역사를 지닌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레고랜드나 레고 하우스처럼, 레고 마니아에게 성지순례지로 인식되지는 못하는 이유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체코 리퍼브릭의 모든 작품은 레고 브릭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간판 사진과 로고 모양에서 보듯이 레고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레고사의 명칭이나 로고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체코 프라하 한복판에 브릭 작품만으로 구성된 전시장이 상설로 존재한다는 점만으로도 반갑고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곳은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쳐 방문하기는 어렵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독자는 알겠지만 300평 규모의 상설 전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처럼 눈에 띄는 입간판이나 커다란 플래카드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중세 동유럽의 숨결이 아직까지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프라하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상세한 사전 정보를 수집하고 스마트폰으로 구글 맵까지 보고 있던 저희 일행도 이 전시장 근처에서 입구를 찾느라 헤맸습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브릭 아트 상설 전시장이 왜 하필 체코 프라하에 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체코는 무역에 유리한 지리적 위치와 1920년대 이후부터 급속도로 발전한 금형 기술, 그리고 많은 기술 인력을 바탕으로 현재 세계 완구 생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고사는 체코에 전략적으로 레고 브릭 생산 공장을 설립해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레고 물류센터와 R&D 센터도 위치해 있어 체코에는 레고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살고 있게 된 것이죠. 체코 리퍼브릭도 그 배경을 기반으로 기획돼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체코의 각 도시에서는 이러한 대형 상설 전시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식 레고 스토어와 소규모 레고 뮤지엄을 겸하는 곳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프라하 시내에도 레고 스토어가 두 개나 있는데요, 일반적인 레고 스토어보다 규모가 크고 다양한 제품과 각종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자, 이제 체코 리퍼브릭 내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탁 트인 넓은 전시장에 다양하고 거대한 레고 브릭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각 작품은 유리 케이스 없이 그대로 진열되고 있었는데요, 작품을 더 자세히 관람하기에는 좋지만 작품 곳곳에 파손의 흔적이 있고, 브릭 사이사이 먼지가 많이 끼어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물론 브릭 아트 작품을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해 전시하는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조명 반사로 작품을 자세히 보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시 기획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덴마크 레고 하우스와 저희 브릭캠퍼스는 후자를, 미국 브릭 아티스트 네이선 사와야 전시와 체코 리퍼브릭은 전자를 선택한 것이지요. 단, 전자를 선택한 전시장은 작품의 유지·보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체코 리퍼브릭은 작품을 받치는 쇼케이스가 아래 사진처럼 관람객의 손이 작품에 닿지 않도록 비스듬히 제작되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관람하는 사람을 충분히 압도합니다. 미니피겨 스케일인 1 대 40 정도로 제작된 건축물은 대부분 높이와 너비가 2m 이상으로, 그 전통과 역사까지 디테일하게 살려 표현했습니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위 사진의 성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입니다. 프라하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한 명도 빠짐없이 방문하게 되는 대표 건축물입니다. 저 또한 이미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작품을 보게 되니 찍어 두었던 사진과 기억을 더듬으며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작품 설명을 보니 제작 기간에 무려 1800시간 투입되었고 40만 개의 브릭이 사용되었더군요.
노란색의 연체동물을 연상시키는 작품도 시선을 끌었습니다. ‘얀 카플리츠키의 국립 도서관’이라는 작품인데요, 얀 카플리츠키는 영국에서 활동한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입니다. 체코가 민주화된 이래 최초로 진행된 프라하 국립 도서관 프로젝트 국제설계공모전에서 당선된 의미 있는 설계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는 바와 같이 디자인의 진보성과 미래적인 감각 때문에 이러한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라하 도심에 건설된다는 것에 체코 내 전통주의자의 반발이 거셌다고 합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현재 유보상태로 남아 있고 얀 카플리츠키는 2009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제 모습은 만나 볼 수 없지만 이렇게 브릭 작품이 그 아쉬움을 달래주고 있네요.
위의 사진들은 모두 체코를 대표하는 건축물입니다. 대부분이 프라하에 위치해 관광하면서 직접 가 본 곳을 레고 브릭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레고 브릭 작품을 보고 나서 실제 건물을 가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100% 레고 브릭으로 재현한 중세 건축물들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새삼 레고 브릭의 엄청난 종류를 실감할 수 있게 된답니다.
체코 리퍼브릭의 자랑은 또 하나 있습니다. 브릭으로 만든 건축물들 사이에 자리한 색다른 작품, 바로 롤러코스터입니다. 트랙의 길이가 총 26m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브릭 롤러코스터 작품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롤러코스터로 알려진 미국 뉴저지의 엘 토로(El Toro) 롤러코스터를 모델로 제작하였답니다. 미니피겨를 잔뜩 태운 롤러코스터가 꽤 높은 경사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쫓다 보면 보는 사람도 괴성을 지르게 하는 마력이 있더군요. 플라스틱 바퀴 부품의 마모를 우려해서인지 15분마다 한 번씩 운행합니다. 작품 앞에는 전자식 타이머 시계가 있어서 운행에 남은 시간을 알려주죠. 5분 정도 시간이 남게 되면 전시장에 사람들이 그 앞으로 몰려온답니다. 그리고 10초부터는 큰소리로 같이 외치죠. 10, 9, 8, 7, 6, 5, 4, 3, 2, 1! Go!!
성인 입장료 한화로 약 1만 5000원, 어린이 약 1만 원인 이곳은 한마디로 총평하자면 ‘충분히 볼 만하다’ 입니다. 특히 브릭을 좋아하는 마니아, 혹은 어린이를 동반하는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는 당연히 안성맞춤의 관광지이죠. 하지만 프라하 관광 중에 우연히 발견해 둘러보았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즐거워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만큼 브릭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답고 놀라운 소재니까요.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브릭 아트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 기획자 입장에서 볼 때 체코리퍼브릭 기획자의 작품을 대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식으로 쌓이는 먼지가 축적되고 파손이 지속될 거라면 유리 케이스를 씌우길 권하고 싶더군요. 또한 모든 작품마다 작품 소개 글이 있는데 정작 작품을 제작한 아티스트 (혹은 빌더)를 명기하지 않고 있는 점은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관리에 소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아티스트’라는 명칭을 고집합니다. 아무래도 빌더보다는 아티스트에 예술가로서의 위상이나 존경심을 더 담을 수 있으니까요. 다음 시간에도 흥미롭고 놀라운 작품이 모여 있는 ‘브릭 아트’로의 여행이 계속됩니다.
(주)브릭캠퍼스 대표이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July 01, 2020 at 10: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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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프라하 지하의 '체코 리퍼브릭' 뭔일 하는 곳일까 - 중앙일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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